요즘 기업들이 10년, 20년 버티기도 어려운 시대에 토라야가 500년을 버틴 비결은 뭘까요? 그 이야기를 이번 디깅레터에서 조금씩 풀어보려고 합니다.

토라야는 1586년,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 선조 때 시작된 화과자점이에요. 에도시대부터 황실에 과자를 납품해온 어마어마한 집안이죠. 현재는 17대 구로가와 미쓰히로 사장이 경영하고 있어요. 17대라니... 상상이 되시나요? 

사실 토라야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위기를 겪었어요. 가장 큰 위기는 1868년 메이지 유신이었죠. 에도시대가 끝나면서 황실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었거든요. 그때까지 토라야의 주 고객이었던 황실과 다이묘(영주)들의 주문이 갑자기 끊어진 거예요. 당시 200년을 넘는 전통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뻔한 순간이었죠.

2차 대전 중에는 설탕 배급제 때문에 아예 생산을 중단해야 했어요. 화과자 회사가 과자를 못 만드는 상황이었으니 정말 절체절명의 위기였죠. 그런데 토라야는 이 시기를 오히려 "기본으로 돌아가는 시간"으로 활용했어요. 전통 제조법을 다시 연구하고, 재료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하는 시간으로 만든 거죠. 전쟁이 끝나고 다시 생산을 시작했을 때, 토라야의 과자는 전쟁 전보다 훨씬 더 맛있어졌다고 해요.

최근에 와서는 서구 문화가 들어오면서 젊은 세대들이 전통 화과자를 멀리하기 시작했어요. 양과자, 케이크, 초콜릿... 달콤하고 화려한 서양 과자들에 비해 소박한 화과자는 '할머니들이나 먹는 음식'이 되어버렸거든요. 이것도 토라야에게는 큰 위기였어요.

토라야는 아주 신중하게 혁신을 시도했어요. 첫 번째 단계가 바로 1980년 파리에 문을 연 해외 첫 매장이었죠. 프랑스 사람들이 일본 전통 과자를 좋아할까 싶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대요. 특히 양갱의 담백하고 절제된 단맛이 프랑스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고 하네요.

저도 토라야 앙스탠드에 실제로 가봤는데 아카사카점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인테리어가 심플하고, 메뉴도 팥 라떼 같이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구성으로 되어 있었어요.

1980년 파리에서 시작된 해외 진출이 일본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혁신으로까지 이어진 셈이에요.

토라야를 공부하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건 그들의 '느림'이었어요. 토라야의 양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거든요. 팥을 우리는 것부터 완성품이 나오기까지 며칠이 걸려요. 팥을 12시간 우리고, 하루 동안 식히고, 다시 설탕과 함께 끓이고... 각 단계마다 정확한 시간과 온도가 필요해요.

요즘 대부분의 식품 회사들이 대량생산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과는 정반대죠. 토라야는 기계로 할 수 있는 일도 여전히 사람 손으로 해요. 양갱의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 작업, 포장지에 싸는 작업까지도 수작업이거든요.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하냐"고 물으면 "그래야 진짜 맛이 나온다"고 답해요.

이런 느림이 오히려 빠른 세상에서 더 큰 가치로 인정받고 있어요. 사람들이 점점 '슬로우 푸드', '수제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거든요. 토라야의 느림은 유행을 쫓아 만든 게 아니라 500년 동안 지켜온 방식인데, 그게 지금 시대에 오히려 최고의 차별화 요소가 된 거예요.

계절마다 다른 과자를 만드는 것도 토라야만의 철학이에요. 봄에는 벚꽃을 형상화한 과자, 여름에는 시원한 느낌의 과자, 가을에는 단풍을 떠올리게 하는 과자... 자연의 리듬에 맞춰 느리게, 정성스럽게 만들어가는 거죠. 일년 내내 같은 제품만 파는 게 효율적이겠지만, 토라야는 그런 효율성보다 계절의 정취를 담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토라야의 진짜 비밀은 따로 있었어요. 그들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모든 선택에 깊은 맥락을 담고 있더라구요.

예를 들어 양갱에 쓰이는 팥은 왜 홋카이도산이어야 하는지, 설탕은 왜 이 특정 종류를 쓰는지, 포장지의 색깔과 문양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모든 것에 이유가 있어요. 그냥 "전통이니까"가 아니라 "왜 이것이 최선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갖고 있는 거죠.

더 놀라운 건 그들의 시간 감각이에요. 토라야는 단기 매출에 연연하지 않아요. 신제품을 개발할 때도 "지금 유행하는 맛"을 쫓지 않고, "10년, 20년 후에도 사랑받을 수 있는 맛"을 추구해요. 실제로 토라야의 대표 상품인 '요칸'들은 수십 년, 심지어 백 년 넘게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17대 사장의 인터뷰를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우리의 목적은 이윤이 아니라 '맛있는 과자' 그 자체를 만드는 데 있다." 이런 철학이 있기 때문에 토라야는 빠른 확장보다는 느린 성장을 선택해요. 매장 하나를 내더라도 그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고, 현지 고객들의 입맛을 연구하는 데 몇 년씩 걸리죠.

결국 토라야의 17대 사장이 한 말이 이 모든 걸 관통하고 있어요.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 처음에는 모순적으로 들렸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맞는 말이더라구요. 모든 선택에 명확한 이유를 갖고, 장기적 관점으로 품질을 유지하는 것... 이 모든 게 결국 진정한 전통을 지키기 위한 변화였던 거죠.

이런 철학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면, 토라야는 양갱의 맛과 품질, 즉 '본질'은 절대 바꾸지 않으면서도 그걸 전달하는 '방식'은 과감하게 바꿔왔어요. 패키징을 전통 문양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현대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젊은 디자이너들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화과자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에요.

토라야가 여전히 에도시대 방식으로만 과자를 팔았다면 지금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브랜드가 되었을 거예요.

토라야의 500년 생존 비결을 정리해보면 결국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어요. 

👉첫째,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관점이에요.

메이지 유신, 2차 대전, 젊은 세대의 기피... 매번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왔거든요. 

👉둘째, 본질과 형식을 구분하는 지혜예요.

맛과 품질이라는 핵심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전달 방식은 시대에 맞게 과감히 바꿔온 거죠. 

👉셋째, 단기 성과보다 긴 호흡으로 사고하는 것이에요.

유행을 쫓기보다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며 결정을 내려온 거예요. 

👉넷째, 모든 선택에 명확한 '이유'를 갖는 것이에요.

그냥 "전통이니까"가 아니라 "왜 이것이 최선인가"에 대한 답을 항상 갖고 있었거든요.

사실 일본에서 돌아온 후에 저에게도 큰 변화가 있었어요. 이사를 하기로 결심한 거예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은 회사에서 정말 가깝고 편리해서 딱히 불편한 점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많이 망설였어요.

하지만 '더 많은 시간을 자연 속에서 보내고, 넓은 공간에서 책 읽고 글을 쓰는 생활을 설계하고 싶다'는 제가 추구하는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동네로 가는 게 조금 불안했지만 그래도 변화하기로 했어요. 실제로 집을 알아보고 새로운 곳에 계약까지 했답니다. 제게도 변하지 않을 본질(글쓰기와 자연 속에서의 삶)은 있지만 그걸 실현하는 방식(거주 공간)은 과감히 바꿔보기로 한 거죠.

님은 요즘 지키고 있는 것과 바꾸려고 하는 것이 있나요? 저는 토라야 이야기를 통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되, 내 안의 본질만큼은 단단히 지켜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438년을 버틴 토라야처럼, 우리도 각자의 방식으로 오래가는 삶을 만들어가면 좋겠어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미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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